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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와 동진의 교섭 항로 = The negotiation sea-lane between Baekje and East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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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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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11(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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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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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백제와 동진의 시기별 교섭양상을 당시 황해 연안의 정세변화와 함께 분석하면서, 교섭 항로에 대해 검토하였다.백제의 동진 교섭에 앞서, 3세기 후반에는 낙랑군과 대방군을 경유하는 황해연안항로가 주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3세기 말 서진이 혼란에 빠지고, 4세기 초 낙랑군과 대방군이 소멸되면서, 황해연안항로 중심의 교섭 경로는 경색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방지역 재지세력은 황해중부횡단항로를 통해 동진, 후조와 교류를 지속하였다. 그 후 대방지역 재지세력 일부가 백제로 유입되면서, 황해중부횡단항로 활용의 경험, 기술, 정보도 유입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동아시아 정세변화 속에서 백제와 동진의 교섭이 시작되었다.백제와 동진의 교섭은 372년부터 386년까지 빈번하게 이루어진 교섭 1기, 386년 이후 406년까지 20년간의 교섭 단절기, 406년과 416년 2회에 걸쳐 재개된 교섭 2기로 구분된다. 교섭 1기에 백제는 황해도 남부를 장악하였지만, 20년간의 단절기에 황해도 남부를 상실하였다. 이러한 군사적 영역변화와 외교적 교섭 사이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황해 연안의 정세변화와 교섭 양상을 검토하여, 당시 교섭 항로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4세기 후반 백제는 고구려와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동진의 가장 큰 적대국인 전진은 요동반도를 장악하고 군사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황해연안항로 활용에는 연안 지리정보의 숙지, 안전한 기항지의 확보가 필수적이었으므로, 당시 백제와 동진의 교섭에서 황해연안항로의 활용 가능성은 낮았다. 황해남부사단항로의 활용 가능성을 제기한 견해도 있었으나, 5세기에 백제의 사신선이 고구려에게 방해받는 사례가 확인되므로 가능성은 낮았다. 그렇다면 백제와 동진의 교섭에서 황해중부횡단항로를 활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백제는 교섭 1기에 황해중부횡단항로의 주요 경유지였던 황해도 남부를 장악하였고, 산동반도 남부와 강소성 연안은 사신선의 항해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교섭 1기에 백제는 안정적으로 황해중부횡단항로를활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교섭 단절기에 백제는 고구려에게 황해도 남부를 상실하고 한강 하구를 봉쇄당하였으며, 동진은 건강과 양자강 하구에서 반란에 시달리고 있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 황해중부횡단항로는 활용되기 어려웠다. 그런데 교섭 2기에 양국 교섭은 2회에 걸쳐 재개되었다. 당시 동진은 계속된 반란을 진압하고, 산동반도를 장악하였다. 백제는 봉쇄된 한강하구를 피해, 화성 남양만 일대에서 출발하여 덕적군도를 경유하는 황해중부횡단항로를 통해 동진과 교섭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백제는 4세기 동아시아의 정세변동에도 불구하고, 황해중부횡단항로라는 새로운 항로를 통해 동진과 교섭하였다. 백제는 능동적이고 유연하게 동아시아 정세변동에 대처하면서, 새로운 항로를 통해 동진과 교섭을 지 속하였다.
더보기This article focuses on the negotiation sea-lane between Baekje and East Jin.Before the negotiation between Baekje and East Jin, the lane sailing along the coast of the Yellow sea(黃海沿岸航路) was mainly utilized via Lelang(樂浪郡) and Daifang(帶方郡). However, the collapse of West Jin, Lelang and Daifang at the beginning of 4th century brought a significant change of negotiation lane. At that time, people of Daifang interchanged with East Jin via the lane sailing across the Yellow sea(黃海中部橫斷航路). As people of Daifang flowed into Baekje after the middle of 4th century, they might bring Baekje a technic about the utilization of the lane sailing across Yellow sea. Under such dramatic changes in East Asia, Baekje started to make a new relationship with East Jin.The negotiation between Baekje and East Jin can be divided into three periods; The first period(372~386) when the negotiation was made frequently, the severance period(386~406) of negotiation, and the second period(406~416) when the negotiation was renewed twice. Baekje took the southern Hwanghae-Do at the first period, but lost it at the severance period. The analysis of the negotiation sea-lane can reveal a relation between territory change and negotiation.The acknowledge of coastal information and maintenance of safe port was material to use the lane sailing along the coast of Yellow sea. But Baekje fought fierce war against Goguryo(高句麗), and the peninsular of Liaodung was seized by Former Qin(前秦), the main enemy of East Jin. Therefore, there is a small possibility that Baekje used the lane sailing along the coast. If so, it is likely to use the lane sailing directly across the Yellow sea to sent an envoy to East Jin.At the first period of negotiation, Baekje occupied the southern Hwanghae-Do. And coastal securities of Shandong(山東) and Jiangsu(江蘇) maintained stable to sail. However, at the severance period of negotiation, Baekje lost Hwanghae-Do and downstream of Han river(漢江) to Goguryo, even East Jin was also troubled with revolts. Therefore, it became impossible to send an envoy to East Jin with using the lane of first period for Baekje. At the second period, the negotiation recommenced twice by sending an envoy with a new lane sailing across Yellow sea, from Hwasung(華城) region, via Deokjeok-do(德積島), not Hwanghae-Do and downstream of Han river.During 4th century, Baekje had actively and flexibly counteracted to the dramatic changes in East Asia to maintain the relationship with East Jin through shifting sea-la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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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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