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평론』 연구 : 전체주의에 대한 대응 담론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InMunPyoungLon : Focused on the Correspondent Arguments about Totalitarianism
저자
발행사항
인천 : 인천대학교 일반대학원, 2008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인천대학교 일반대학원 : 국어국문학과(일반) 2008. 2
발행연도
2008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발행국(도시)
인천
형태사항
66 p. ; 26cm
소장기관
본 논문은 「인문평론」을 연구한다. 특히 전체주의에 대한 대응 담론을 중심으로 주요 필자들의 논의를 살펴보았다. 「인문평론」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4월까지 간행된 문예비평잡지이다. 주요 필자로 최재서, 임화, 김남천, 이원조 등의 문학 비평가들과 서인식, 박치우, 신남철, 김오성 등 역사철학자들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이미 1930년대 중반부터 우리 문단의 주요 논의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당대를 ‘전환기’로 파악하고 있었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여러 가지 문제의식에 기인할 터이지만 그 중에서도 ‘전체주의의 대두’가 가장 큰 문제로 파악되었다.
이에 따라 전체주의에 대응할 새로운 원리가 모색되기 시작했다. 「인문평론」이 파악한 전체주의의 문제점은 전체에 의해 개인의 인간적 가치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중일전쟁 이후 일본에 의해 실시된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은 이와 같은 우려를 확인시켜주었다. 일본의 전쟁 수행을 위해 인간과 문학이 전쟁의 도구로 동원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체주의의 대두가 문학의 위기이자 인간적 가치의 위기로 인식되었다.
한편 「인문평론」은 개인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인문평론」이 당대를 개인과 개인이 분열하고 개인과 사회가 분열한 시대로 파악하였는데, 그 원인이 개인주의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의 분열을 극복할 새로운 원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 원리는 전체화의 원리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문평론」은 전체주의와 개인주의를 극복할 ‘새로운 전체성의 원리’를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원리의 모색은 중일전쟁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38년 12월, 백철은 조선일보에 「시대적 우연의 수리-사실에 대한 정신의 태도」를 발표하였다. 여기서 백철은 중일전쟁이라는 제국주의 침략 전쟁을 극복하여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인문평론」은 이 글을 두고 중일전쟁에 대한 지식인의 태도를 설정한 최초의 ‘권위 있는 논문’이라 인정했다. 역사철학자들은 중일전쟁 이후 일본이 제창한 동아협동체론의 반제국주의적 요소들을 재해석하여 일본의 전체주의에 대응할 새로운 원리의 재료로 삼고자 하였다. 당시 조선의 시국은 중일전쟁과 관련된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에 따라 좌우되었다. 「인문평론」은 이러한 시국 현실에 대해 외면하거나 침묵하기보다 그것에 직접 대응함으로써 극복하려는 적극적 태도를 보여주었다.
문학론에서도 현실에 대한 적극적 태도가 유지되었으며 새로운 전체성의 원리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김남천과 임화는 개인과 사회가 분열하여 조선 소설계가 침체에 빠진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면서 장편소설 창작을 통해 분열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한편 최재서와 서인식은 고대 서사시에서 개인의 신념과 사회의 신념이 조화된 사회상을 보았다. 개별성과 전체성의 조화에 대한 「인문평론」의 문제의식이 장편소설론과 서사시 논의로 나타났다.
국책문학(國策文學) 또한 문학론의 논의 대상이었다. 일본은 전쟁문학과 생산소설을 장려하여 문학을 전쟁에 동원하려 했다. 그러나 백철은 종래의 전쟁문학을 전쟁과 전혀 무관한 문학성의 차원에서만 검토하여 비판하였다. 그리고 최재서는 독일 전몰학생(戰歿學生)의 서한집(書翰集)만을 논의하면서 거기 수록된 편지들의 보고성(報告性)과 생생함을 문학적으로 긍정 평가하였다. 또한 임화는 생산소설 창작을 통하여 작가가 소재에 대한 장악력을 높일 것을 기대하였다. 요컨대 「인문평론」은 국책문학을 국책과 무관한 문학론의 영역으로 옮겨놓았다.
한편 「인문평론」의 비평정신은 ‘지성주의’라 할 수 있다. 「인문평론」 비평가들이 현실을 파악하고 새로운 원리와 문학을 창조기 위해 ‘지성’을 거점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지성은 서구의 문화 전통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서구적 문화 전통이 자리 잡히지 않았던 조선에서 그들의 요구에 부응할 만한 지성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들이 전체주의가 대두하는 위기의 시대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그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지성이 요청되었다. 이에 따라 ‘교양론’, ‘신세대론’, 문학사 기술 등을 통해 새로운 지성을 모색하였지만 그들의 논의는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 했다.
「인문평론」의 비평가들은 전체주의의 대두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논의들을 전개했다. 일본의 국책과 전체주의에 대응하여 문학론을 도출하였고 새로운 전체성의 원리를 모색하였다. 「인문평론」은 제국주의 현실 속에서 지식인과 문학이 존재하던 방식의 일단을 보여준다.
This thesis is for studying The InMunPyoungLon. Especially, I examined the arguments of the main writers focused on the correspondent arguments about totalitarianism. The InMunPyoungLon was a magazine of literary criticism which was published from October 1939 to April 1941. The literature critics ― Choi, Jae-seo, Lim, Wha, Kim, Nam-chun, and Lee, Won-jo ― and the historical philosophers ― Seo, In-sik, Park, Chi-woo, Shin, Nam-chul, Kim, O-seong ― took part in the writing for the magazine as the main writers. They already leaded the main arguments of Korean literary world from mid-1930s. And they thought the era as a 'turning point'. Although this historical recognition was caused by various critical minds, the 'rise of totalitarianism' was the most important critical mind among them.
The writers, therefore, tried to find a new principle which can correspond to the totalitarianism. The problem of totalitarianism raised in The InMunPyoungLon was that the humane value of individuals could be threatened by totality. After the Sino-Japanese War, the 'Movement of National Spiritual Mobilization' carried out by Japan realized the anxiety. Because human and literature should be mobilized as the instrument for carrying out the war. Thus, the 'rise of totalitarianism' was not only the crisis of human but also the crisis of literature.
Also, The InMunPyoungLon had critical attitude for individualism. The magazine analyzed the era as a disrupted era between individual and society and among individuals due to individualism. So the necessity of a new principle to overcome the disruption was caused. It was nothing but the principle of totalization. The InMunPyoungLon , therefore, tried to find a 'principle of new totality' to overcome the totalitarianism and individualism.
It was began from the discussion on the Sino-Japanese War to grope the principle. Paek, Chul contributed 'Acceptance of the Era Fortuity―Attitude of Spirit on the Fact' to the Chosun Ilbo in December 1938. He tried to establish a new future by overcoming the aggressive war of imperialism, the Sino-Japanes War, in his thesis. The InMunPyoungLon admitted the article as the first 'authoritative thesis' which set the attitude of the intellectuals about the Sino-Japanese War. The historical philosopher re-analyzed the anti-imperialistic factors in the Theory on the Cooperative System of East Asia proposed by Japan after the Sino-Japanese War and they tried to use the contents as a material of new principle which correspond to the totalitarianism of Japan. At that time, the situation of Chosun was determined according to the imperialism policy of Japan related to the Sino-Japanese War. The InMunPyoungLon showed positive attitude which is willing to overcome the national situation by directly corresponding to the reality rather than took negative attitude by neglecting the reality or keeping silent.
The writers in literary world maintained the positive attitude toward the reality and evolved the discussion on the principle of new totality. Kim, Nam-chun and Lim, Wha claimed that the world of Chosun novel was depressed because of disruption of individual and society. Then they tried to overcome the disruption by writing novels. From the ancient epics, meanwhile, Choi, Jae-seo and Seo, In-sik discovered the social aspect which harmonize the individual creed with the social creed. The critical mind of The InMunPyoungLon on the harmony of individuality and totality was expressed by discussion on the novels and epics.
The national policy literature was also an object of discussion in the literary world. Japan tried to mobilize the literature to conduct war by encouraging the war literature and the productive novels. But Paek, Chul criticized the traditional war-literature by studying it in the only literary aspect which is irrelevant to war. And Choi, Jae-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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