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홍수의 은거 주제 회화 연구
저자
발행사항
서울 : 弘益大學校 大學院, 2016
학위논문사항
學位論文(博士)-- 弘益大學校 大學院 : 美術史學科 東洋美術史 專攻 2016.2
발행연도
2016
작성언어
한국어
DDC
759.952 판사항(22)
발행국(도시)
서울
기타서명
Chen Hongshou's paintings on reclusion themes
형태사항
iii, 206 p., iii : 삽화 ; 26 cm
일반주기명
국·영문초록수록
지도교수: 韓正熙
참고문헌: p. 173-184
소장기관
陳洪綬에 대한 연구는 중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비교적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져왔지만, 그의 회화세계의 핵심적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은거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진홍수에게 은거는 자신의 삶 및 시대와 맞물리며 중요한 작품의 제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후대 인물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본 논문에서는 은거 개념의 규명, 진홍수의 생애에 대한 재구성, 그의 은거 주제 회화작품의 분류와 분석을 통해 그 예술세계의 실체에 접근해보고자 했다.
진홍수는 과거시험을 통해 고위 관료를 다수 배출한 부유한 문인 집안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그의 생애에 대한 기존의 연구에서는 과장된 당시의 전기를 그대로 받아들인 탓에 그가 불우한 성장기를 보냈고, 일찍부터 그림을 그려 팔 수 밖에 없는 불우한 상황이었음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사실 진홍수는 명나라가 망하기 이전까지 부유한 생활을 지속했고, 많은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는 문인화가로서 교유적 차원에서의 작품만을 주로 그리고있었다.
그러나 명나라가 망한 이후 청나라와 타협을 거부한 뒤, 모든 가산을 버린 채 은거하게 되었다. 생계를 위해 직업화가로 살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진홍수가 회화의 주제로 비중 있게 다루었던 것이 바로 은거였다. 국가가 멸망하고, 유민이 된 한족 지식인들에게 은거 주제 회화는 다른 어느때 보다도 자신의 상황을 이입시키기에 적합한 주제였다. 또한 이는 진홍수에 본인에게도 그러했다. 진홍수가 다양한 은거 주제 회화를 제작하게 된 것이 그의 생애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실 은거는 그 기원이 신화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이후 은거는 면면히 지속되어 왔고,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있어서 행동기제의 하나로 자리잡으며 역사적,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녀왔다. 그렇지만 은거의 개념이나 성격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랐다. 본래 은거는 단순히 속세를 벗어난다는 차원의 도가적 속성이 짙은 것이었으나, 옳지 못한 현실에 대한 부정으로 인해 행해질 경우 유가적 속성을 지니기도 했다. 이러한 유가적 성격의 은거는 원대와 같이 한족이 이민족에게 지배받을 때에 등장하곤 했다.
한편 唐代와 같은 평화의 시대에는 허울에 가까운 은거가 등장하여 지식인들이 자신을 포장하는데 활용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는 안정기가 오래 지속된 명대에도 살펴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다만 명대에는 어려운 과거시험의 합격과 이로 인해 낙방한 각 지역 지식인들의 누적으로, 이들이 자신을 市隱으로 지칭하는 변종적인 상황이 발생하기에 이른다. 그렇지만 청나라의 등장으로 이러한 은거는 사라지고, 다시금 은거의 본질에 가까운 유가적 은거가 등장하게 된다. 이는 명조의 유민으로 남았던 진홍수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회화사적으로 보면 은거 주제 회화는 산수화가 대세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인물화가 중요했던 위진남북조시대나 당대의 경우 은거 주제 회화 인물화가 다수 그려졌지만, 점차 산수화에게 그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홍수는 문인화가들이 잘 다루지 않던 인물화에 집중했고, 그 핵심 주제로서 은거를 택했다. 활발히 그려지지 않던 은거 주제 인물화가 진홍수에 의해 본격화되었던 셈이다.
진홍수는 이전의 은거 주제 회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대표적 은자인 陶淵明을 자주 그렸다. 그러나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기보다는 도연명의 생애와 문학에 대한 충실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색을 가미했다. 또한 그는 趙孟堅과 같이 기존에 다루어지지 않던 새로운 隱者像을 개성적인 화면으로 다룸으로써 그 지평을 넓히기도 했다. 《博古葉子》 역시 기존에 잘 다루지 않던 은자상이 다루어진 사례이다. 더욱이 기존의 관점과 달리 은자의 가난함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이나 이것이 청초 한족 유민들의 어려운 상황과도 연결되는 것이라는 점은 매우 인상적인 부분이다.
진홍수의 은거 주제 회화는 그의 초상화를 통해 발현되기도 했다. 그의 초상화는 피사인물을 도연명이나 白居易와 같은 고대의 이상적 은자로 표현한 것들로 당시 은거 주제 회화에 대한 선호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진홍수는 초상화 기법에 능하지 않았으므로 초상화가와의 합작을 통해 작품을 완성함으로써 완성도와 가치를 높였다.
한편 진홍수의 작품 가운데에는 특정한 은자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닌, 은자의 다양한 일상생활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도 있다. 이 그림들은 익명의 은자를 다룬 것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그림들로 수량적으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그림들은 외형적으로 보면 초상화와는 거리가 먼 진홍수의 유형화된 인물화에 가깝지만, 당시에는 진홍수의 명성에 힘입어 실제 인물의 초상화로 인식되기도 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이러한 화면 자체의 익명성 때문에 이러한 그림들은 진홍수와 면식이 없는 수요자들에게 팔렸을 가능성이 크다.
《隱居十六觀冊》의 경우 진홍수 말년의 대표작으로서 그간 다양하게 그린 은거 주제 회화를 집성한 것이다. 이 그림은 집성이라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진홍수와 수요자인 친구 沈灝, 더 넓게는 청초의 명조 유민들이 자신의 모습과 상황을 고대의 은자로 은유하고, 또 상기하고자 했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진홍수는 청초에 은거 주제 회화를 본격적으로 개척함으로써, 이후 은거 주제 회화의 폭을 넓힌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회화사적으로 산수화 위주의 은거 주제 회화를 탈피했고, 주로 직업화가들에 의해 그려지던 은거 주제 인물화와도 차별화에 성공했다. 李公麟과 같은 선구적인 文人畵家에 의한 인물화를 제외하면, 직업화가들에 의한 은거 주제 인물화는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성향이 강했다. 그러나 진홍수의 경우 자신 스스로가 풍부한 학문적 기반과 문학적 소양을 지닌 문인화가였던 만큼, 인물화를 통해서 새로운 시도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후 그의 은거 주제 회화는 청대의 인물화, 특히 19세기 海上畵派의 인물화와 초상화에 기반이 되는 등 회화사의 중요한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This dissertation aims to analyze the paintings of Chen Hongshou(陳洪綬), addressing the theme of “reclusion(隱居),” a seminal subject of his painting during his lifetime and thereby approach the nature of his art.
Chen was born into and brought up in a rich scholar official’s family that turned out a lot of high-ranking officials through state examinations. After the Ming Dynasty perished however, he retired to a hermitage and became a full-time artist for a living. A theme Chen dealt with significantly at that time was “reclusion.” This was a suitable theme for Han Chinese intellectuals to sinuate their situation.
The theme of “reclusion” had been a significant motivation for Chinese intellectuals since its emergence in the mythic era.
However, its concept and character was different in accordance with age and situation. Its concept was initially Taoist in its nature – to renounce the mundane world – but became Confucian when it came across an unrighteous reality. The
notion of “reclusion” appeared in the Yuan and Qing dynasties when the Han Chinese were ruled by other ethnic groups.
Paintings predicated upon this theme in Chinese painting history were mostly landscapes. Chen Hongshou concentrated on figure painting and accepted “reclusion” as a principal theme.
He established figure painting addressing this theme as a painting genre. He created his own distinctive scenes anchored in his understanding of the life and literature of hermits, untrammeled by established manners in dealing with the theme of retirement or retreat. He also pursued new aspects in this type of painting: he addressed new hermits and their noble poverty.
This theme was also represented in his portrait painting. His portraits adapted his subjects into ancient ideal recluses, intimating a preference for the theme of reclusion at that time.
Sixteen Images of Reclusion(隱居十六觀冊) compiled collection of paintings dealing with the theme of reclusion is of great significance in that Chen and other Ming people tried to liken themselves and their lives to ancient recluses.
Chen Hongshou is regarded as an artist who extended the realm of figure painting through his earnest exploration of painting dealing with the theme of reclusion. Figure paintings of rofessional artists addressing the theme of reclusion tended to
follow the established idioms of this painting genre, save for hose of Li Gonglin(李公麟). As Chen was a literati painter who ad a solid academic foundation and copious knowledge of iterature, he was able to make a new attempt through figure
painting. Afterwards, his paintings on the theme of reclusion ad a profound influence on figure painting in the Qing Dynasty nd the figure painting and portraits of the Shanghai School(海上畵派) of the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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