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전쟁기억의 정치와 국가정체성
저자
발행사항
서울 :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2008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 외교안보학과 2009. 2
발행연도
2008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발행국(도시)
서울
형태사항
v, 205 p. : 삽도 ; 26cm.
일반주기명
경기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소장기관
본 논문은 한․중․일 3국이 20세기 경험했던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한국전쟁에 대한 전쟁기억을 어떻게 재현하며, 그 과정에서 국가정체성의 역할과 기능은 무엇이며, 나아가 동아시아 국제관계와 전쟁기억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가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한․중․일 3국의 전쟁기념관의 생성, 확장 그리고 변화를 추적한 결과, 전쟁기념관이 단지 과거의 보존을 위한 정체된 역사․문화적 산물로 다음 세대들을 위한 교육의 장소로써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외 정치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국가정체성을 반영하는 민감한 기억의 정치가 재현되는 정치적 공간임을 규명하였다. 한․중․일 3국의 전쟁기념관은 대표적인 개별국가의 국가정체성의 표상으로써 타 국가와의 관계성을 노출시키고 있다. 또한 그것은 불규칙적으로 ‘적대’와 ‘우호’패턴을 보여줌으로써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갈등과 불안정을 야기하고 있다.
한국의 전쟁기념관은 국난극복과 영웅 만들기에 기초한 ‘반일(反日)민족주의’와 북한을 적으로 한 ‘반공(反共)민족주의’ 서사가 전쟁기억의 추축을 이루고 있다. 이는 분단이라는 역사적 현실이 국내외 정치 동학 속에서 민족주의와 결합되어 ‘분단민족주의’ 서사로 재현되었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전쟁기억은 오랫동안 군위안부, 원폭피해자 그리고 민간인 학살의 문제 등을 망각하게 한 원인이다. 또한 대외적으로 반일 민족주의에 대한 기억의 과잉은 중국 전쟁기념관처럼 일본에 대한 화해와 용서 그리고 중일우호협력이라는 새로운 기억의 창출하려는 노력을 가로 막고 있다. 민주화이후 상황이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까지 대부분 전쟁기억의 재현을 국가가 주도하고 있어 일본군위안부역사박물관을 제외하고 한국에서 시민단체 및 이익집단의 이해를 반영한 민간차원의 전쟁기념관을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의 전쟁기념관은 개방과 개혁시대를 맞이하여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쇠퇴로 인한 공백을 메우고 국민적 통합을 위하여 철저히 ‘중화 민족주의’에 호소하였으며, 치욕의 감정을 기반으로 한 항일전쟁에 대한 기억의 복원을 강조한다. 이데올로기적 공백기에 정치적 안정과 국민통합의 차원에서 시작한 애국주의는 1980년대 이후 확대하여 ‘위대한 중국’이라는 기치를 내건 중화주의로 발전하였으며 그것은 전쟁기념관의 엄청난 확산을 가져왔다. 그러나 평화, 여성문제, 소수민족들의 전쟁 희생과 인권 문제를 포괄하는 전쟁기억의 인도주의적 측면을 배제하였으며, 국가가 기억을 배타적으로 독점하여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전쟁기억의 재현을 봉쇄하였다. 이는 외연적 무늬만 다를 뿐 내용은 모두 중화 민족주의에 기초한 항일전쟁에 대한 기억만을 재현하는 복사판 기념관만을 양산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일본의 전쟁기념관은 가해와 피해의 딜레마 속에서 히로시마적 원폭민족주의와 야스쿠니적 보수민족주의가 경합하고 있다. 아울러 일본의 가해사실을 인정하며 평화운동을 중심으로 한 대항기억을 재현하는 다양한 평화기념관들이 공존한다. 전후 일본은 독일과 달리 자기반성적인 ‘하나의 기억’을 형성하는 데 실패하였다. 이는 ‘피해와 가해의 이중성’에 기인한 것이며 그 이면에는 자민당의 보수적 정치권력 및 국외적으로는 미국의 영향이 크다. 결국 이것이 일본이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본 논문은 3국의 전쟁기념관들의 고찰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하였다. 첫째, 3국은 태평양 전쟁에 대한 공유된 공통의 기억 창출에 실패하였으며 각국의 경험에 따라 이를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둘째, 3국이 공통적으로 전쟁으로부터 희생당하였다는 피해의식이 강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민족주의적 감정에 호소하는 이른바 ‘피해의식의 민족주의화’ 혹은 ‘민족주의적 피해의식’만을 강조한다. 셋째, 피해의식의 민족주의는 전쟁희생자 속에서 ‘영웅 만들기’에 주력하였으며 이러한 선택적 기억은 영웅이 아닌 민간인들의 희생을 배제하거나 망각시켜, 또 다른 망각과 기억 배제라는 문제를 야기하였다. 넷째,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역할이 전쟁종결에 결정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대한 기억을 애써 축소 혹은 은폐하였다.
결국, 3국의 전쟁기념관은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는 정체된 문화적 공간이 아니라 정치화된 기억이 역동적으로 표상되는 공간이다. 한․중․일 3국의 전쟁기념관은 대표적인 국가정체성의 상징적 표상으로써 타 국가와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적대’와 ‘우호’라는 모순적 패턴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패턴은 3국간에 외교적 충돌이 일어날 때 마다 불규칙적으로 재현되어 동아시아 ‘지역기억복합체’(regional memory complex)를 형성한다. 동아시아 지역기억복합체의 핵심은 3국의 기념관들이 ‘우호’와 ‘적대’ 패턴의 모순을 보여주는 국가정체성을 생산하여 대외적으로 기억의 충돌을 야기하는 것이다. 일본의 야스쿠니적 기억은 중국과 한국의 반일기억과, 중국 항미원조전쟁기념관의 친북반미적 기억은 한국 용산전쟁기념관의 반공주의 정체성에 기초한 친미반북적 기억과, 한국과 일본의 평화기념관의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는 중국의 전쟁기억과 충돌하고 있다. 따라서 한․중․일 3국의 전쟁기억은 미국과 유럽국가들 사이에 공유하는 2차 대전에 대한 기억의 합의와 달리 아직도 경합과 충돌을 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전쟁기념관이 ‘기억의 정치 공간’으로써 민감하게 작동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본 논문은 탈냉전시대를 맞이하여 동아시아 3국이 국가정체성을 반영하는 정치적 도구로써 전쟁기념관을 경쟁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쟁기념관이 생산하는 전쟁기억의 재현, 경합 그리고 대외적 기억의 충돌이 동아시아 역사적 특수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써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불안을 지속적으로 야기하고 있음을 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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