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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과 숙종어진(肅宗御眞)의 제작과 봉안―성군(聖君)으로 기억되기― = A Study of the Production and Enshrinement of King Sukjong's Portra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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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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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肅宗, 재위 1674-1720) 대에 이르러 역대 국왕의 어진 봉안처를 중건·개수하는 작업과 역대 국왕의 어진을 이모·보수하는 작업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숙종은 스스로 자신의 어진을 여러 차례에 걸쳐 제작하고 완성된 어진을 여러 전각에 봉안하였다. 이러한 작업들은 일반적으로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중단되거나 없어진 조선 초기 어진 제도를 복구한 행위로 설명된다. 그러나 특히 숙종에 의해 200여 년 만에 재개된 현임 국왕의 어진 제작의 원인을 단순히 옛 제도의 회복이란 측면에서만 파악하기는 어렵다.
숙종은 재위 2년 만에 태조어진의 이모 작업을 시도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이로부터 12년 만인 1688년에 도감(都監) 설치를 통해 이 작업을 완수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이모 작업을 마무리한 지 1년도 채 안된 시점인 1689년 3월에 조세걸(曺世傑, 1635년경-1704년 이후)로 하여금 자신의 어진을 제작하게 하였다. 이때 그가 그 어진의 제작을 이미 몇 해 전에 계획했음을 밝힌 사실로 미루어 그는 태조어진 모사와 자신의 모습을 포착한 초상화의 도사를 거의 동시에 추진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숙종은 자신의 초상화를 제작한 지 6년 만인 1695년에 조세걸을 시켜 다시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였다. 이때 숙종은 완성된 어진 두 본을 후대에 선원전(璿源殿)으로 지칭된 궐내 전각 및 강화부에 세워진 장녕전(長寧殿)에 각각 보관하였다. 숙종은 태조어진의 모사 작업을 도감 설치를 통해 공개적으로 진행했으나 1689년과 1695년 두 차례의 어진 도사 및 1695년 본의 장녕전 봉안 등의 사업들은 신하들과의 논의 없이 모두 비공개로 추진하였다. 그의 재위 후반기인 1713년에 이르러서야 숙종은 도감 설치를 통해 공식·공개적으로 자신의 어진을 도사하고 봉안하는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1713년의 어진 도사 사업을 통해 재임 국왕의 어진 제작 관행이 200여 년 만에 재개되고 또한 어진 제작 및 봉안 관련 의절이 새로이 마련된 점에서 이 도사 사업은 조선 후기에 어진의 제작 및 봉안 제도가 정립되고 발전적으로 계승되는 데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1688년부터 1713년 까지 숙종이 지속적으로 추진했던 어진 관련 일들이 서로 매우 긴밀히 연계된 사업들이라는 점이다.
숙종이 도감 설치를 통한 공식적이며 공개적인 절차로 자신의 어진을 제작 하고 봉안하고자 한 것은 무엇보다 그 어진을 단지 자신을 재현한 그림이 아닌 자신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 즉 자신의 ‘대체물’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가 1713년의 어진 도사 시에 1688년의 태조어진 모사 시에 사용되었던 의절을 그대로 적용하고 신하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게 하며 또한 신분이 낮은 화사들로 하여금 자신을 빈번하게 첨망하게 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표현하도록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숙종은 자신의 모습이 매우 핍진하게 재현된 초상화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이 후대의 자손 및 신하들에게 정확히 전해지고 또한 그들에게 태조 및 세조와 같은 국초(國初)의 공적이 큰 열성(列聖)에 버금가는 군왕, 즉 성군(聖君)으로 기억되기를 강력하게 기대하고 염원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 초상화의 선원전 및 장녕전 봉안을 통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이러한 자신의 기대와 염원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으로 생각된다.
King Sukjong (r. 1674-1720) made serious efforts to reconstruct and repair the halls of royal portraits as well as to copy and restore the portraits during his reign. In addition, the king ordered his portraits to be painted several times and kept them in various halls. The work commissioned by him is intended to be the reinstatement of the various systems related to the production and enshrinement of royal portraits of the early Joseon period, which were suspended or disappeared around the Imjin War (1592-1598). King Sukjong tried to produce a copy of the portrait of King Taejo (r. 1392-1398) in 1676, two years after his enthronement but failed to do it. He completed reproducing the portrait by establishing the Superintendency for Copying the King's Portraits (Eoyong mosa dogam) in 1688. In the third lunar month of 1689, less than a year after its completion, he ordered Jo Segeol (ca. 1635-1704) to paint his portraits. In 1695, six years after his portrait was drawn, he asked Jo to paint him again. At this time, he kept the two completed portraits in two special halls: Jangnyeongjeon in Ganghwa Province and Seonwonjeon in the palace. He carried out these projects from 1689 to 1695 without consulting with his officials. It was not until 1713 that he was able to produce his portraits officially and openly and hang them in the two halls by establishing the Superintendency for Painting the King's Portraits.
When producing the portraits in 1713, King Sukjong officially and publicly used the same procedures and performed ceremonies that he arranged for the reproduction of Taejo's portrait in 1688, such as the establishment of a directorate and the selection of the main painter through examinations. The king actively advocated the opinions of his subjects and let court painters observe him frequently in order for them to capture a truthful likeness of him. It reveals that he wanted to impart sovereignly authority to his portrait to serve as a substitute for him. In other words, the king wanted accurate portraits of him and made them serve as substitutes for him for posterity. He was eager to be remembered as a great monarch comparable to former great kings such as King Taejo and King Sejo (r. 1455-1468) through his portraits as he and his contemporaries commemorated the two king’s distinguished accomplishments. King Sukjong used his portraits as a means of enhancing his kingly way and rulership. In the late Joseon period, the literati who belonged to a particular school or faction commissioned portraits of their teachers after their passing and built shrine to hold memorial services. Enshrinement of a teacher’s portrait was aimed to commemorate him as a great scholar. Local people began to build shrines for their magistrate, produced his portrait, and hung it on the wall of shrines to celebrate his remarkable achievements. Late Joseon kings commissioned court painters to paint loyal subjects regularly and stored some of the portraits in the palace or in state institutions. They thought that each of the subjects should be remembered as a ‘loyal subject’ to future generations. King Sukjong also hoped that his descendants would see his appearance in his portraits and then remember him as a sage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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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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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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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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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37 | 0.37 | 0.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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