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역사화해 관점에서 본 조선 숙종 대 노산군 복권 조치 = A Case of Historical Reconciliation: The Reinstatement of a Dethroned King in the Late Seventeenth-Century Chosǒn Korea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0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63-196(34쪽)
KCI 피인용횟수
1
DOI식별코드
제공처
소장기관
숙종은 재위 전반기(1680~90년대)에 일련의 복권조치를 단행했는데, 그 압권은 노산군 복권이었다. 이는 230년이 넘도록 잊을만하면 등장하던 뜨거운 감자를 국가 차원에서 국왕이 적극적으로 해소한 역사화해 조치였다. 특히 폐주를 국왕으로 복권하여그 위패를 종묘에 들이는 일은 기존의 왕통을 총체적으로 재구성하는 중차대한 조치였다. 왕조 국가에서 왕통을 재조정하는 일은 조선왕조의 국가 정체성과 정통성을 재정립하는 중대한 정치 행위일 수밖에 없었다. 숙종의 의도에 대해서는 대체로 군신 의리에 입각한 왕권강화책의 일환이라는 설명이 주를 이룬다. 다만, 왕권 강화 욕망은국왕이라면 누구나 공유하는 본능이다. 따라서 숙종의 왕권강화책이라는 설명이 타당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국왕들은 왜 노산군 복권에 미온적이었는지도 함께 살펴야 할것이다. 즉, 왜 숙종 때에 이르러서야 노산군에 대한 복권이 가능했는가, 라는 질문이필요하다.
본고에서는 삼전도항복(1637)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왕조를 재건해야 했던 시대적요구에 착안하였다. 삼전도항복의 충격으로 사대부의 인심이 흩어지고, 인조의 항복을금수만도 못한 패륜으로 간주하는 정서가 심해지던 17세기 중・후반은 그야말로 왕조의 크나큰 위기였다. 효종은 그것을 북벌론으로 타개하려 했지만, 1680년대에 들어서면서 청질서가 확고해짐에 따라 북벌론은 시의성을 완전히 상실했고, 대내용 정치선전 기능마저 잃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1674년에 즉위한 숙종으로서는 북벌론을 대체할 새로운 대안이 절실하였다. 이때 숙종의 생각이 바로 왕통의 흠결을 메워서 재정립하는 것과 그동안 사림의 숙원이던 노산군 문제의 완전 종결이었다. 숙종과 신료들은 세조의 정통성을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과 노산군의 무고함도 인정해야 하는 딜레마를 절충과 타협으로 풀었다. 한편으로는, 세조의 정통성을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국가의 왕통에는 전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국왕 숙종의 이해관계에 따른 결과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산군이 무고한 피해자임을 숙종이 인정하였다. 이는 사림의숙원을 국왕이 공식적으로 풀어준 셈이었다. 이로써 노산군은 단종이라는 묘호를 추증받아 정식으로 조선왕조의 제6대 국왕으로서 종묘에 들어갈 수 있었다. 국왕과 사림이 서로 한 발씩 양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서로 ‘윈-윈’하는 선에서 대타협을 성공시킨 사례이다.
On ascending the throne, Sukchong (r. 1674-1720) took a series of measures to reinstate a couple of dethroned kings with emphasis on Yi Hongwi (r. 1452-1455), dethroned and murdered by his uncle Sejo (r.
1455-1468), a usurper. As time went on, more and more Confucian elites participated constantly in petitioning for his reinstatement to achieve justice. The k ings, however, were g enerally l ukewarm because t hey could not officially deny the legitimacy of Sejo. For this reason, the issue of innocent Yi’s reinstatement was a sort of hot potato on the political stage in the central government for no less than 230 years. Unlike other earlier kings, why Sukchong eagerly pushed ahead with the plan for reinstatement? What made him to do so? This paper pays attention to the needs of the times in the 1680-90s. The Korean surrender to the Manchu in 1637 devastated the national identity of the Chosǒn dynasty because the Manchus shook the ideological foundations of the dynasty in the form of Neo-Confucianism based on Zhu Xi’s cosmology and his interpretations of the Classics. The Korean kings and the ruling yangban elites had been indoctrinating their people with the principles of loyalty to the monarch and filial piety to parents and had also praised the Ming emperor as the ritual ‘father’ who gave Chosŏn a second life by saving it from Japanese aggression in the 1590s. After the surrender and under Manchu interference, however, in reality and theory Chosŏn was now forced to betray its father and vow to serve the father’s enemy, the barbaric Manchu khan. It was not only a national humiliation but also an ideological crisis and a serious violation of moral principles. The surrender to the Manchu emperor indeed functioned as a symbolic event signifying that the ethical and diplomatic foundations of the Chosŏn dynasty were now destroyed. For the rebuilding of the dynasty in the late 1600s, Sukchong first devoted himself to reinforce the flawed Royal line. Indeed, Yi Hongwi was still in the list of treason criminals in spite of his kingship for three years. This paper highlights Sukchong’s such an action in the larger context of the reconciliation of history.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12-01 | 평가 |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 KCI후보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76 | 0.76 | 0.8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8 | 0.79 | 1.814 | 0.18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