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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최초의 사대부상, 최덕지(崔德之, 1384-1455) 초상화의 전승과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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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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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0(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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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 1384-1455)는 조선 태종~문종 연간에 활동한 문신으로서 특히 세종조의 성세(盛世)에 관료를 지내면서 집현전 학사들과 교유하며 덕망이 높았던 인물이다. 그는 문종 즉위 후에 예문관 직제학을 지내다가 노령을 이유로 사퇴하고 전라도 영암으로 내려가 학문에 몰두하였다. 최덕지 사후에 그의 초상화는 그의 강학처였던 존양루에 봉안되었고, 이후 사당과 서원의 건립이 이어져 이모본이 봉안되면서 후손 및 사림의 첨배 대상으로 존숭되었다.
최덕지 초상화는 조선시대의 사대부상 중 가장 이른 작품으로 일찍이 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영암 영보리 영당의 <최덕지상 정본>과 <유지초본>은 1975년 보물 제594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그러나 최덕지 초상은 영보리 영당에 2 점이 더 있고 임실 주암서원에도 1본이 있어 총 5점이지만 이들에 대한 면밀한 고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 연구에서는 먼저 문헌을 통해 최덕지 초상화의 전승 내력을 살펴보고, 이어 현존하는 5점의 작품에 대한 양식 고찰을 행하였다.
먼저 최덕지 초상화에 표현된 복식을 보면 직령(直領)의 청포를 걸치고 허리에 홍대(紅帶)를 둘렀는데 이는 고려 말의 유풍이 있는 공복(公服)에 해당되고, 머리에 착용한 관모(冠帽)는 일종의 오건(烏巾)으로 단추와 같은 돌기가 있는 독특한 규식인데 이는 사복(私服)에 속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서안을 앞에 놓고 독서하는 선비의 모습을 표현한 도상이다. 이는 고위 관료를 지낸 최덕지의 위상을 드러낸 동시에 향리에 은거한 선비의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표상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최덕지 초상화의 전승 내력을 살필 수 있는 곳으로 첫째, 최덕지가 중앙 관료직을 사임하고 은퇴하여 살았던 영암 영보 마을의 영당, 둘째, 영암의 사족이 힘을 모아 설립한 녹동서원(구 존양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원(현 임실)의 주암서원이다.
첫째 영암 영보리 영당은 최덕지가 거처했던 곳에 설립된 사당이다. 최덕지 초상화는 최덕지의 강학처였던 존양루에 봉안되다가 1578년(선조 11)에 사당 건립 후 사당의 영당에 봉안되었다. 정유재란 중에 이 사당은 소실되었으나, 초상화는 나주의 본손(本孫) 묘산에 매안(埋安)한 덕분에 온전하였다. 전란 후 1610년(광해 2)에 꺼내어 개장했고 이후 이모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초상화는 1659년(현종 즉위년)에 다시 건립된 영당에 봉안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 영보리 영당에 총 3점의 최덕지 초상화 정본과 유지초본 1점이 있는데, 이 중 ‘궤장본’이 17세기 양식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영보리 영당본이라 여겨진다.
둘째 녹동서원은 본래 최덕지 향사(享祀)를 위해 1630년(인조 8)에 창건된 존양사(存養祠)에서 시작되었다. 1713년(숙종 39)에 사액되어 녹동서원으로 개칭되었으며, 이 때 최덕지 초상화 이모본을 제작하여 봉안하였고, 1769년(영조 45)에 또 한 차례 이모하여 봉안하였다. 이후 녹동서원에는 1769년 제작본이 봉안되어 내려오다가 1868년(고종 5)의 서원철훼 때 영보리 영당으로 옮겨졌던 것으로 파악된다. 영보리 영당의 현존작 중 ‘보물 지정본’과 ‘유지초본’은 18세기 양식 특징을 보이고 있어 녹동서원의 1769년본일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진다.
셋째, 주암서원은 남원(현 임실)의 최덕지 후손들이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1774년(영조 50)에 설립한 곳이다. 녹동서원의 1769년본을 토대로 이모본을 제작하여 주암서원 영당에 봉안하였다. 주암서원에 현존하는 <최덕지 초상화>는 양식에서도 18세기 말의 특징을 지닌 작품으로 기록과 부합된다.
한편, 영보리 영당에 현존하는 ‘신본’은 20세기 중반에 ‘궤장본’을 토대로 이모한 본이다. 당시 ‘궤장본’을 모본(母本)으로 삼았던 것은 그것이 영보리 영당에 원래 걸려있던 영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 문헌 자료와 현존 초상화의 양식을 검토하여 최덕지 초상화의 전승 내력을 알아보고 현존작에 대한 편년을 시도하였다. 최덕지 초상화는 초상화 양식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던 1970년대에 보물로 지정된 이래 작품에 대한 면밀한 분석 검토 없이 지금까지 15세기의 원본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본 연구에서 그동안 흑장궤에 담긴 채 잊혀졌던 ‘궤장본’과 기존에 주목되지 않았던 ‘주암 서원본’ 및 ‘신본’에 대한 조사를 하여 최덕지 초상화 현존작 5 점에 대한 편년을 새롭게 시도하였다.
Choi Deok-ji(崔德之, 1384-1455) was a high-ranking official active during the reign of Kings Taejong~Munjong. In 1451, he resigned from office and returned to his home in Yeongam, Jeolla Province to concentrate on confucian studies. After his death, his portrait was enshrined in Jonyanglu(存養樓) Pavilion, where he had studied and taught students. Later, as his offsprings and followers constructed mortuary shrines for him, his portrait was copied and enshrined in more places to be revered and cherished.
Choi Deok-ji portrait has been acknowledged as an important work because it is the earliest extant example of a scholar"s portrait of Joseon Period. The Choi Deok-ji Portrait and the Sketch(Chobon) versions in the Portrait Shrine in Yeongbori Village in Yeongam were designated Treasure No. 594 in 1975. Since then, these two versions have been authorized as the original versions from the 15th century. However, there are two more versions of Choi Deok-ji portrait extant in the same shrine in Yeongbori Village, one of which has been kept inside a portrait case and long forgotten, and one more version in Juam Seowon(舟巖書院) in Imshil, North Jeolla Province, both of which had not yet been studied.
In this paper, written documents related to the production of the portrait were studied in detail to find out when and how each copies were produced and how they were handed down in each shrine. Also, five extant versions of Choi Deok-ji portrait were studied and analyzed to assess the stylistic features and their production dates.
The conclusion is that unlike the existing authorization, the portrait and the sketch designated Treasure No. 594 are the 18th century copies which had been enshrined in Nokdong Seowon(鹿洞書院) and moved to the present location of the Portrait Shrine in Yeongbori Village after the crack down on Seowon in 1868.
And the probable original version which the written records point to be the work from the 15th century is the one kept in the portrait case in the same shrine in Yeongbori Village. However, this portrait case version stylistically shows it"s from the 17th century, which, in fact, accords with the written record that the Choi Deok-ji portrait was repainted between 1610 and 1635. Thus, the original Choi Deok-ji portrait from the 15th century does not exist and the portrait kept in the case is the oldest extant version from the 17th century.
One more version in the shrine in Yeongbori Village is a work of the mid 20th century. Since the production of this 20th century new version, the offsprings say the older three versions had been put together in the portrait case until two of them were designated treasures. At present, the treasure versions and the new version are hung on the wall.
Finally, one more version enshrined in Juam Seowon(舟巖書院) was produced in 1774 when Choi Deok-ji"s offsprings residing in Namwon(present Imshil) constructed the shrine. The stylistic features of this version accords with the written record.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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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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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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