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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지진 때 한인 학살에 대한 歐美 한인세력의 대응 = The Massacre of Koreans in the Great Kanto Earthquake and the Reactions of Koreans and Pro-Korean Groups in Europe and the United States
저자
홍선표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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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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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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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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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18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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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per examines the massacre of Koreans in the Great Kanto Earthquake of 1923, and the reactions of Koreans and pro-Korean groups in Europe and the United States.
At the news of the massive murder, The Korean Student Association of Germany held The Great Meeting of Koreans in Germany in Berlin on October 26, 1923, and condemned the Japanese barbarity. Li Kolu, one of the organizers, also published a booklet entitled Unabhangigkeitsbewegung Koreas und Japanische Eroberungspolitik in German in February 1924 to inform the general public of the reality of the massacre. Japan dismissed these reactions as communist activities, and propagated false information that Koreans committing criminal acts were the cause of the incident.
Koreans in the continental United States were kept in the dark about what was overshadowed by the great earthquake until October 1923, when they began to organize reactions. 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 in North America launched a fundraising campaign to collect consolation money for the victims, while The New Korea covered the misery extensively in a series of articles entitled The Truth of the Massacre of Koreans, revealing the brutal act of Japan.
Koreans residing in Hawaii, who learned about the massacre through local press such as Honolulu Advertiser and Honolulu Star Bulletin, held a large memorial meeting as well as an anti-Japan rally on October 25, 1923, led by 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 in Hawaii. They also wrote a resolution in January 1924 that was disseminated to the Japanese government and press, as well as to media organizations in China, calling for fair punishment of the murderers, appropriate compensation for victims, and the withdrawal of the Japanese army and political organizations from Korea.
The League of The Friends of Korea, which had 21 offices in the United States and one each in London and Paris, acted, under the leadership of Floyd W. Tomkins, the Philadelphia Office Head, to urge Charles Evans Hughes, then Secretary of State, to investigate the truth of the massacre. Contrary to these reactions, pro-Japan Americans in the United States helped conceal and trivialize the Japanese barbarity, along with the lack of interest and coverage on the part of the American media. Aside from Japan’s deceptive propaganda, this was not unrelated with the stance of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that regarded the horrible scene as a mere domestic issue, prioritizing its friendship with Japan.
본고는 관동대지진 당시 일어난 한인 학살문제에 대해 유럽과 미주지역의 한인 및 친한 단체가 어떻게 대응하였는지를 살펴보는 글이다.
관동대지진 당시 한인학살문제를 접한 독일 내 유덕고려학우회는 1923년 10월 26일 베를린에서 일제 침략만행을 규탄하는 재독한인대회를 개최하였다. 또 대회 주관자의 한 사람이었던 이극로는 『한국의 독립운동과 일본의 침략전쟁』이라는 소책자를 독일어로 발간(1924. 2)해 한인학살의 진상을 널리 소개하였다. 이러한 한인 유학생들의 활동에 대해 일본 측은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으로 치부하였고 한인 학살의 원인은 그들의 범죄행위에 따른 것이라는 기만적인 선전활동으로 대응하였다.
미국 본토의 한인들은 관동대지진 이면에 있던 한인학살의 참상을 곧바로 파악하지 못하다 1923년 10월부터 본격 대응에 나섰다. 대한인국민회는 학살당한 한인들을 돕기 위한 동정금 모금활동에 착수하였고, 『신한민보』는 ‘한인학살사건의 진상’ 이라는 제목으로 집중 연재하며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였다.
하와이의 한인들은 Honolulu Advertiser, Honolulu Star Bulletin 등을 통해 한인학살 사실을 접한 후 대한인교민단을 중심으로 1923년 10월 25일 추모회를 겸한 대대적인 항일 규탄 대회를 개최하였다. 1924년 1월에는 결의안을 작성해 이를 일본 정부와 언론, 중국 내 각 언론사에 배포하고 학살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과 희생자에 대한 정당한 배상, 한국 내 일본 군대와 정치기관의 철수 등을 당당히 요구하였다.
미국 내 21개와 런던과 파리에 각 1개씩 조직을 갖고 있던 한국친우회는 필라델피아 한국친우회 회장 톰킨스를 중심으로 미국 국무부장관 휴즈에게 한인 학살의 진상 조사를 촉구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한국친우회의 활동에 反해 미국 내 친일 미국 인사들은 한인 학살사실을 은폐하거나 사소한 것처럼 무시하였고 미국 언론도 한인 학살문제에 관심을 갖고 접근하지 못하였다. 이는 일본 정부의 기만적인 대외선전활동 외에 한인문제를 일본의 내정문제로 간주하고 미일간의 친선을 우선시 한 미국정부의 입장과도 맞물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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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18 | 1.18 | 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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