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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臣之番’으로서의 百濟ㆍ高句麗遺民 = The Baekje and Goguryeo Diaspora into Tang since Empress Wu’s period to Kaiyuan era
저자
우에다 기헤이나리치카 (學習院大學) 연구자관계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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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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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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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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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259(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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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im of this article is to clarify the circumstances of the Baekje and Goguryeo Diaspora into the Tang dynasty. The Baekje and Goguryeo used to be independent states in the Korean peninsula, but they fell in 660, 668, attacked by the Tang dynasty and Silla dynasty. Then, the people of the two countries were often called “the Baekje and Goguryeo diaspora”.
Recently research on the Baekje and Goguryeo Diaspora is developing because a lot of their epitaphs have been discovered in China. However, the previous studies analyzed only one part of their epitaphs. They gave attention only to the first generation of the Baekje and Goguryeo diaspora. The circumstances of their second and third generations, who had lived since Empress Wu’s period(690-705) to the Kaiyuan era(713-741), is still unclear. This article investigates the circumstances of the diaspora from Wu’s period to the Kaiyuan era by an analysis of all of their epitaphs and other records relating to them.
Firstly, exploring their epitaphs demonstrates the relation of the diaspora to the Tang government in Empress Wu’s period. The Baekje diaspora was close to the empress’s family: they had a blood relationship with her family, and devoted themselves as soldiers. The Goguryeo diaspora was very important for Empress Wu’s government: they also devoted themselves as soldiers, and as bureaucrats.
Secondly, examining their epitaphs demonstrates the relation of the diaspora to the Tang government in the Kaiyuan era. The Baekje diaspora can rarely be found in records; the Goguryeo diaspora can be found in records which show that they were soldiers and aides of the Emperor. In addition, the mainstream of the diaspora significantly shifted. The families of the diaspora who had been high class and close to Wu’s government were declining. On the other hand, a new type of the diaspora appeared: they had not been high class families in Empress Wu’s period.
Thirdly, analyzing the Baekje and Goguryeo diaspora’s participation in Feng and Shan sacrifices in Kaiyuan 12(725) explains their role in international relations at that time. Feng and Shan sacrifices were a religious ceremony showing an emperor’s authority. Envoys of Silla and Balhae participated in the ceremony as a “Waichen” while Beakje and Goguryeo diaspora did as a “Neichen”. “Waichen” means an independent state, “Neichen” means a state dependent to the Tang dynasty. The two types of states sometimes had a hostile relationship. On this point, the ceremony showed the international relations in Kaiyuan era. The purpose of why the Tang dynasty treated the Baekje and Goguryeo as a “Neichen”, Silla and Balhae as a “Waichen” was to create conflict between the two side states and to check the development of the Silla and Balhae. The two countries, Shilla and Balhae, had been growing on the Korean peninsula. The Tang dynasty was always watching the growth of the two countries, which were on the east side of Tang’s territory. Thus, there is no doubt that the Baekje and Goguryeo diaspora were still playing an important role from Wu’s period to the Kaiyuan era.
요새 7세기 후반 동아시아사 연구 분야에 있어 유민사는 매우 발전하고 있다. 기왕의 연구를 바라보면 주요 논점은 유민의 정체성, 백제ㆍ고구려의 제도사ㆍ사회사였다. 이러한 연구는 유민 제1세대 즉 초기 유민 묘지명에 대해서만 검토하는 경향이 있어, 무주시기ㆍ개원기의 제2세대 이후의 유민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된바가 없다.
무주시기부터 현종대에 이르기 까지 유민 위상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연구 자체가 부족한상황이다. 연구 현황이 이러한지라 중요한 역사적 사건임에도, 개원 13년에 거행된 泰山 封禪祭에 있어 ‘百濟 帶方王’과 ‘高麗朝鮮王’으로 칭한 백제 유민과 고구려 유민의 왕족으로 추측되는 인물들이 ‘內臣之番’으로 참석하였다는 사실조자 잘 알려지지 않고 그 역사적 의미는 불분명하다.
본 논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검토를 하고자 한다. 개원 연간의 봉선제에 백제ㆍ고구려 유민들이 참석한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 傳世文獻과 묘지명을 통해 무주시기에서부터 개원 연간에 이르기 까지 유민의 처우, 특히당 長安, 洛陽에 거주한 옛 왕족과 유력 가문의 동향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무주시기의 유민들은 당시 권력자와 밀접한 관계를 만들어 놓고 그 세력을유지해 왔다. 즉 이 시기 유민들은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을 벌였던 것이다. 둘째로, 개원기의 유민들은 그 세대교체가 진행되어 그 존재 양태가 변화하였다. 이후 옛 왕족이나 천 씨 등 유력한 가문들이 쇠퇴하여 이 시기부터 새로운 유형의 유민들이 등장했다. 셋째로, 개원 13년의 봉선제에서 옛 왕족을 각기 ‘百濟 帶方王’, 그리고 ‘高麗 朝鮮王’으로 처우했던 것은 앞선 시기부터 성행해진 신라ㆍ발해 등 東方 세력에 대한 견제 전략의 일환이었다. 넷째로, 봉선제에서 유민을 신라와 발해에 對峙시킨다는 당의 정책은 이후 신라ㆍ당 관계, 그리고발해ㆍ당 관계에 영향이 미친 가능성을 제기했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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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21-07-02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Institute of KoguryoBalhae -> Association of Koguryo Balhae | KCI등재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8-02-14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고구려연구 -> 고구려발해연구외국어명 : The Koguryo Yonku -> The KoguryoBalhae Yonku | KCI후보 |
2008-02-13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고구려연구회 -> 고구려발해학회영문명 : Institute of Koguryo Studies -> Institute of KoguryoBalhae | KCI후보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5-05-30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미등록 -> Institute of Koguryo Studies | KCI후보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78 | 0.78 | 0.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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