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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의『권업신문』활동 시기에 대한 재검토 = Re-examination of the Period When Danjae Was Active in His Writing in “Kwoneop Shin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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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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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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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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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4(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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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가『권업신문』에 활동한 시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여전하다. 특히 단재가『권업신문』을 그만둔 시기는 1912년 9월에서 1914년 8월 폐간 때까지 실로 차이가 많이 있다. 최근에는 가장 이른 시기로 1912년 9월에, 가장 늦은 시기는 1913년 7월로 그 간극이 좁혀졌지만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본고에서 본 연구자는 일본의 정보보고 문서를 근거로 기존의 논자들이 말하는 1912년 9월 주필 사임설을 부정하고 단재가 1913년 7월경까지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물며 논설 등을 발표했음을 논증하였다. 우선 1913년 1월 초까지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물렀음은 백원보의 편지를 통해 입증하였다. 그것은 또한「중국혁명사략」이 1912년 5월부터 같은 해 10월 27일까지 실린 사실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울러 1912년 2월 16일에 발표된「단군 시대의 시」,「사법명의 무공」이 단재의 글임을 밝히고, 단재의 흔적이 드러나는「광무 을사 이전의 본국신문」 1913.2.16.),「발칸반도에 새로 흥하는 세 나라」(1912.11.24.~12.2.),「몬테네그로대왕 니콜라스의 이야기」(1913.1.26.), 그리고 계봉우와 장도빈의 언급을 통해 단재가 1912년 9월 주필란에서 이름이 빠진 이후에도 여전히 논설 등을 썼음을 밝혔다. 특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신채호씨와 한 旅館에 留宿하여 수년간을 함께 있었다”고 장도빈의 증언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도빈은 1912년 4월 말경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여 1914년 봄에 그곳을 떠났는데, 비록 과장이 있다 하더라도 단재와 블라디보스토크에 함께 머문 시간은 1년을 넘었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또한 일본의『외교시보』에서는 1913년 7월경까지 단재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권업신문 주필이었음이 언급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앞에서 언급한 글들이 1912년 9월 이 후에도 단재가 여전히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무르며 글을 썼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결론적으로 단재가 1913년 7월경까지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물며 권업신문에 참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더보기The argument about the period of active writing of Danjae in “Kwoneop Shinmun” is the same. Particularly, There is a huge gap between Danjae’s departure time from “Kwoneop Shinmun” in September 1912 and finish of the publication of the newspaper in August 1914. Recently, this gap has been reduced by researchers to the most early period in September 1912 to most late period in July 1913, but the argument still remains the same. In this paper, I oppose the view of existing arguments, based on Japanese documents, that Danjae resigned as the chief editor in September 1912. I will demonstrate in this paper that Danjae published editorials and other works till around July 1913 while he was in Vladivostok.
First of all, according to a letter of Baek Weonbo, he stayed in Vladivostok until early January 1913. We can assert that Danjae was in Vladivostok at that time based on the fact that “A Brief History of Chinese Revolution” was published from May 1912 to October 27th in the same year. Furthermore, I reveal that the works: “Poem of Dangun Era”, “Military Glory of Sabupmyung”, “Three New Flourishing Countries in Balkan Peninsula”(1912.11.24~1912.12.02), “Story of Nicolas The Great King of Montenegro”(1913.02.16) are Daenje’s. Through references to Kye Bong-woo and Jang Do-bin, I prove that Danjae continuously wrote editorials and other works while his name did not appear as Chief editor of the column. Especially, it needs to be noted that Jang Do-bin’s wrote: “I stayed many years with Mr. Shin Chae-ho in the same Inn” in Vladivostok. Jang Do-bin travelled to Vladivostok in the end of April 1912 and left in Spring 1914. Even though it could be an overstatement we can easily assume that Jang Do-bin’s period staying together with Danjae in Vladivostok could be more than a year.
It is also mentioned in “Diplomate Magazine”of Japan that Danjae was a chief editor in Kwoneop Shinmun at Vladivostok till around July 1913. More importantly is that the above mentioned works reveal that Danjae continuously wrote while he was staying in Vladivostok even after September 1912. It is conjectured that Danjae stayed in Vladivostok till around July 1913 and associated with Kwoneup Shinmun.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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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5-05-20 | 학술지등록 | 한글명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외국어명 : JOURNAL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STUDIES | KCI후보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59 | 0.59 | 0.61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4 | 0.62 | 1.442 | 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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