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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 연구 100년의 성과와 과제 = The Achievements and Tasks of 100 Years of ‘Silhak(實學)’ Research
저자
유봉학 (한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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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4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7-48(42쪽)
제공처
Over the past 100 years, the study of ‘Silhak(實學)’ has produced tens of thousands of research results, but these have not been properly organized, and problems in both research and education on Silhak persist to this day.
The confusion in the study of ‘Silhak’ originates from the fact that, since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research on ‘Silhak’ was carried out based on the premises of colonial historiography, viewing the history of the Joseon period through the lens of the ‘history of colonialism(植民史學)’ and the ‘theory of Confucianism leading to the downfall of the country(儒敎亡國論)’. Joseon Confucianism had three branches: ‘UirijiHak(義理之學)’, ‘GyeongjeMyeongmuljiHak(經濟名物之學)’, and ‘SajangjiHak(詞章之學)’. However, by recognizing Joseon Confucianism only as ‘UirijiHak(or 性理之學)’, it was disparaged as ‘empty theory(空理空談)’ or ‘empty learning(虛學)’, that was blamed for the decline of Joseon. In contrast, the ‘Gyeongje(Myeongmul)jiHak’ which was considered opposed to ‘empty learning’, came to be labeled as ‘Silhak’, which led to further confusion.
The labeling of Joseon Confucianism as merely philosophy, specifically as ‘SeongriHak(性理學)’, originated from the research of the colonial historian Takahashi Tōro (高橋亨) in the 1910s. After the ‘Joseon Studies Movement (朝鮮學運動)’ in the 1930s, ‘Silhak’ was spotlighted, but even after Korea's liberation, it continued to be explained as being in opposition to ‘SeongriHak’.
‘SeongriHak’ was linked with the ruling class or the Noron(老論) faction, while ‘Silhak’ was associated with civil intellectuals(在野知識人) or the Nam-in(南 人) faction. This led to the interpretation that the Joseon dynasty collapsed because the conservative ruling class rejected the ideas of ‘Silhak’ scholars.
From the 1970s onward, with the reflection on colonial historiography, serious criticism of these explanations emerged. As the study of ‘Silhak’ expanded and deepened, new explanations were offered regarding its concept, academic style, and the scope of ‘Silhak’ scholars. It was revealed that ‘Silhak’ was not in opposition to ‘SeongriHak’ but instead developed within the intellectual traditions and academic framework of Confucianism(especially Zhu Xi’s Confucianism) in the Joseon era. ‘Silhak’ was identified as a scholarly tradition, ‘Gyeongje(Myeongmul)jiHak(經濟名物之學)’ that had been continuously studied alongside ‘UirijiHak’ and ‘SajangjiHak’ by Joseon Confucian scholars who led Joseon society.
In the 18th century, ‘Silhak’ emerged as a practical intellectual tradition advocated by the leading class of Joseon society, the ‘GyeonghwaSajok (京華士 族)’. During the reigns of King Yeongjo and King Jeongjo, ‘Silhak’ became a policy adopted and practiced by the government.
Since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misconceptions about Joseon Confucianism and ‘Silhak’ have caused confusion in history education as well.
Despite new research results emerging, textbooks continue to follow outdated narratives, which significantly hinder students' ability to form accurate historical perspectives. To correct this, it is urgent that scholars organize and present new research findings and revise the content of textbooks.
The issues revealed in the study and education of ‘Silhak’ should first be approached as objects of ‘understanding’ before ‘being criticized’. The results of ‘Silhak’ research, which were achieved while contemplating the difficult realities of Korean society, should be respected as the hard-won efforts of historians. Moving beyond the limitations revealed in ‘Silhak’ research, the task before us is to properly identify and educate on the full scope and true nature of the scholarship and thought that led Joseon dynasty.
지난 100년간 ‘實學’의 연구는 1만 수천 건에 이르는 많은 연구성과를 산출하였지만, 제대로 정리되지 못하였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실학 연구와 교육은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실학 연구에서의 혼란은 일제강점기 이래 실학 연구가 植民史學의 조선시대 사관과 儒敎亡國論을 전제로 진행된 것에서 유래한다. 조선유학에는 ‘義理之學’, ‘經濟(名物)之學’, ‘詞章之學’의 세 분과가 있었으나, 조선유학을 ‘의리지학(혹은 性理之學)’으로만 인식하여 ‘空理空談’ 혹은 ‘虛學’이라 폄하하면서 조선 망국의 책임을 전가하고, ‘허학’과 반대된다고 생각한 ‘경제명물지학’을 ‘실학’이라 지칭한 것에서 혼란이 야기되었다.
조선유학을 철학으로 한정지어 ‘性理學’이라 지칭한 것은 1910년대 식민사학자 다카하시 도로(高橋亨)의 연구가 출발점이었다. 1930년대 조선학운동 이후 실학이 본격적으로 조명되었지만, 해방 이후로도 실학은 성리학과 반대되는 학풍으로 설명되었다. 성리학을 집권층 또는 노론과 연결짓고, 실학은 재야지식인 또는 남인과 연결시켰으며, 실학자들의 구상을 보수적 집권층들이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조선이 망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1970년대 이후 식민사학에 대한 반성과 함께 이러한 설명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되었다. 실학 연구의 확대, 심화에 따라 실학의 개념과 학풍, 실학자의 범위에 대하여도 새로운 설명이 제시되었다. ‘실학’은 성리학과 대립한 것이 아니라, 전통 유학(주자학)의 학통과 학풍 속에서 배태되어 나왔음이 밝혀졌다. ‘실학’은조선사회를 이끌었던 조선유학자들이 ‘의리지학’, ‘사장지학’과 함께 꾸준히 연구 했던 ‘경제명물지학풍’에 주목한 것이었다. 18세기에는 조선사회의 주도계층으로 대두한 ‘경화사족’층이 제기한 실용적 학풍으로서, 영조 정조대에는 그들의 정치적 진출과 함께 실학은 정책으로 입안되어 실천되기도 하였다.
오랫동안 지속된 조선유학, 그리고 실학에 대한 오해는 역사 교육에서도 혼란을 초래했다. 학계의 새로운 연구성과가 나왔음에도, 그와 유리된 채 과거의 서술을 답습하고 있는 역사교과서는 학생들의 올바른 역사관 형성에 많은 지장을초래하고 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학계는 새로운 연구 성과를 정리하여 제시하고, 교과서 서술을 바로잡는 것이 시급하다.
실학 연구와 교육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은 ‘비판’에 앞서서 ‘이해’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한국사회의 어려운 현실을 고민하며 이루어 낸 실학 연구의 성과는 역사학자들의 苦鬪의 흔적으로서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간 드러난 ‘실학’ 연구의 한계를 넘어서서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학문과 사상의 전체상과 진면목을찾아내고 올바로 교육하는 일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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